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르헤 세라노 엘리아스 (문단 편집) == 막장 행보 == 당초 카르피오가 심히 우려했던 부분은 세라노의 [[권위주의]]적인 스타일이었다. 카르피오는 "세라노 그 사람...너무 권위주의적이고 너무 막 나간다"라고 한 소리 했을 정도. 그래도 처음에는 뭐 그럭저럭 통치하며 "설마 그럴리가"였는데... 애초에 세라노 정권은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이었다. 그도 그럴 만한 [[이유]]가, 그가 소속된 연대행동운동(MAS)이 원내 116석 중 겨우 '''18석'''이라는 아주 적은 의석만을 차지한 군소 정당이었기 때문이다. 물론 이것도 300석이나 되는 [[대한민국]] 국회에 비하면 의석이 약 ⅓ 수준에 지나지 않으니 그렇게 군소 정당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나, 당장 저런 의석으로는 여당이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. 세라노는 이를 타개하고자 세레소 전 [[대통령]]이 소속되어 있는 [[기독교민주당]](이하 기민당)과 카르피오의 [[국가중앙연합]]과 연정을 시도했다. 그러나 이들은 독재자의 기질이 있는 데다 더더욱이나 정통성이 취약하고 기반이 불안정한 세라노와 손을 잡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. 특히나 세레소의 기민당이 군사 독재 시절을 청산하고 [[민주화]]를 주도했다는 점에서, 솔직히 저러한 독재자의 기질이 있는 사람을 누가 --미쳤다고-- [[환영]]이나 할까? 더더욱이나 카르피오는 세라노를 대놓고 [[비판]]했던 사람이었는데... 이러한 연정은 결국 "한지붕 두가족"이라는 어색한 상태로 나아갔다. 그래도 외교적으로는 좀 생각이 있었는지 옆동네인 [[벨리즈]]와 화해를 하려고 했으나, 당장 벨리즈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민심의 이반만을 초래했다. 한편으로는 경제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시도도 있었으나, 이마저도 의견충돌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. 결국 세라노 정권은 [[막장]]으로 흘러들어갔다. [[1993년]], 계엄령을 선포하고 절대적인 독재자가 되었으며, 이후 표현의 자유를 사악하게 탄압하고 반대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강행하기 시작했다. 황당한 건 세라노는 한때 군사정권에 맞서 저항했던 인물이지만 정작 [[본인]]이 되려 독재자가 되었다는 점이다. 결국 전국적인 민중 봉기가 일어났으며, 1993년 [[6월 1일]], [[쿠데타]] 이후 [[사임]]을 선언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